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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신학과 설교

조용기 목사의 '좋으신 하나님 신학'(1)

by Jkid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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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읽고 있는 조용기 목사.
책을 읽고 있는 조용기 목사

 

1980년대 초반에 나왔음에도 여전히 목회 사역의 의미와 방법론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고 있는 목회신학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토마스 오덴은 목사는 극도로 다양한 정치적 상황들, 역사적 정황들, 사회 문화적 환경들 가운데서 교역을 실천해 왔다.”라고 말한다(목회신학, 67).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목회자는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 곧 자신의 목회적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영산 조용기 목사의 삶과 사역은 한국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상황 속에서 목회 사역을 펼치고 신학 체계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영산 조용기 목사의 삶은 지금도 한국교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목회 현장에서 싹튼 조용기 목사의 '좋으신 하나님' 신학

영산이 이해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그의 하나님 이해야말로 그의 목회와 신학의 근간이 되며 그 둘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 이해는 한국전쟁 직후 한국이라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서울 변두리 대조동이라는 그의 목회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1958년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조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히 그가 교회를 시작한 대조동은 지방에서 가난에 시달리다가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왔다가 패배한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이었다. 그는 당시를 마치 미국 서부의 개척시대 같았다.”라고 회상한다(“선교와 목회”, 25). 교회 개척 후 6개월이 지났지만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머리의 이를 잡아주고, 코를 닦아주고, 손발을 씻어주고, 찬송을 부르고, 율동을 가르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헌금도 없었고 교회를 돕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그로 자신의 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천국이 있으니 모두 예수 믿고 지옥 대신 천국을 가야 한다.”라는 전통적인 방식의 설교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목회와 신학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목회하던 동네에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던 부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였다. 그는 아주머니,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 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정색하고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지옥에 간다고? 지금 내 삶이 지옥인데 이보다 더 무서운 지옥이 어디에 있어. 천당? 당신들 예수쟁이들 천당’, ‘천당하지만은 천당이 그렇게 좋거들랑 천당 부스러기라도 좀 갖다 줘. 천당 부스러기라도 갖다 주지 못하면서 무슨 천당이야.” 절망 가운데 외친 그 부인의 외침은 그에게 외면할 수 없는 외침이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나의 필요도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를 가지고서 어떻게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는 미래의 천당보다 먹을 수 있는 밀가루 한 부대와 신발 한 켤레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삼중축복의 뿌리인 조용기 목사의 '좋으신 하나님' 신학

그는 새로운 삶을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당시의 그 절박한 상황과 무관한 고답적인 복음을 설파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던 분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인간의 영혼이 잘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은 물론 현실 세계의 절망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자라난 것이 삼중축복(삼박자 구원)의 신학이다. 그리고 삼중축복의 뿌리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그는 말한다. “삼박자 구원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뵈어야 할 분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우리 마음 깊이 사무쳐야 합니다.”(구역예배공과 I,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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